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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헤르만 헤세 - 싯다르타

by 별바람그대 2020. 6. 21.


헤르만 헤세는 독일계 스위스인이며, 소설가, 시인이며 화가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서는 '데미안'으로 워낙 유명한 작가이다. 헤르만 헤세는 집안의 환경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동양사상을 접하게 되었고 그의 그 관심은 소설 '싯다르타'을 탄생하게 만들었다. 


제목의 싯다르타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부처의 실제 이름으로 알려져 있으며 실제 풀네임은 '고타마 싯다르타'이다.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에서는 주인공이 '싯다르타'이고 우리가 알고 있는 부처는 '고타마'로 나온다. 소설 안에서는 둘은 엄연히 다른 존재이지만 결국엔 싯다르타는 고타마이며 고타마는 싯다르타이다. 


우리가 말하는 부처는 아명으로 깨달은 자를 말하며 이는 석가모니, 세존, 여래 등등으로 불리운다.


불교는 인도 힌두교의 뿌리라고 볼 수 있다. 오래전 아리안들이 인도로 건너와 베다를 인도인들에게 설파했다. 베다란 힌두교, 이슬람교, 그리고 기독교에서 경전인 구약성경이라고 보면 된다. 이 베다와 베다의 한 부분인 우파니샤드를 통해 힌두교가 만들어졌다. 


불교에서 바라보는 부처는 깨달은 자 즉 신과 같은 존재이지만 힌두교에서는 보는 부처는 그 당시 많고 많은 사문 중 한 명으로 보고 있다. 


그 당시 힌두교는 사회적인 문제가 될 만큼 많은 사문들이 있었다. 사문이란 출가하는 사람 즉 깨달음을 얻기 위해 고행길을 나서는 사람들을 말한다. 힌두교는 부처도 이들 중 한 명이라고 보는 것이다. 


채사장 작가님의 지대넓얕 0권을 빌려와 잠깐 설명하자면 힌두교와 불교의 극명한 차이점은 불교는 아트만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즉 힌두교와 달리 아트만 즉, 고정 불변의 자아란 없는 것으로 받아 들었으며 대신 무아설을 말했다. 하지만 베다의 업, 윤회, 해탈이라는 기본 세계관은 그대로 받아 들었다. 이는 고정된 불변의 자아가 없는데 무엇이 윤회하고 삶을 반복한다는 것인지에 대해서 실제로 부처의 제자들은 부처에게 묻기도 하였다. 


이에 부처는 '독화살의 비유'로 알려진 유명한 답을 한다. 소설속에서 등장인물들은 이 깨달음을 얻기 위해 여행을 하고 있다. 


소설에서는 고타마는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부처의 존재가 되었으며 싯다르타는 깨달음을 얻기 위해 계속 여행을 떠난다. 이 소설에서 싯다르타는 속세를 떠나 스스로 깨달음을 얻기도 하며 또는 속세에 빠져 사문의 길을 접고 속세의 사람이 되기도 한다. 


소설 처음부터 등장하는 싯다르타의 친구인 고빈다는 소설의 마지막을 장식한다. 이 소설에서 싯다르타와 고빈다는 서로 다른 길을 선택함으로써 깨달음을 얻고자 한다. 서로 오랫동안 만나지 못하다 우연히 만난 고빈다는 싯다르타에게 깨달음에 대해 묻자 싯다르타는 이렇게 답한다. "당신 같은 고승에게 내가 무슨 말을 해드릴 수 있겠습니까? 어쩌면 당신은 깨달음을 구하는 데 지나치게 매달리는 것은 아닐까요? 구도에 너무 전념한 나머지 깨달음을 얻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요?" 


이는 깨달음을 얻기 위해 지나치게 깨달음에 매달리는 친구 고빈다에게 싯다르타가 말하는 부분이다. 부처의 핵심적인 가르침인 4정제와 8정도 중 4성제의 집성제는 집착을 의미한다.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사람이 깨달음을 구하는데 너무 집착하면 깨달음으로부터 멀어진다는 것이다. 


소설은 마지막 부분을 향해갈수록 흥미로워진다. 특히 개인적으로 강가에서, 뱃사공, 그리고 대미를 장식한 고빈다 부분이 가장 재밌었다. 소설 마지막 고빈다와 싯다르타의 마지막 부분은 스포가 될 것이기에 적지 못해서 아쉬울 뿐이다. 종교를 믿는 편은 아니지만 꽤 흥미롭게 읽은 책이다. 


소설이라는 특징 때문에 어디서부터 어떻게 말해야 스포가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되어 글이 뒤죽박죽이다. 개인적으로 종교적인 책이 아닌 철학적인 책이라고 보면 이해가 쉽다. 평소에 깨달음을 얻고자 철학에 관심이 많다면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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